설교

여호수아 5장:1-12
“삶의 우선 순위”
2017년 2월 12일

우리는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큰 일과 작은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 판단하고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때로 정말로 중요한 일은 하찮게 여긴다.
오히려 중요 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해 버릴 때가 있다.
정말로 내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
그것을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가 확인해 보라.
그리고 그 중요한 일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고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점검해야 한다.
중요 하지도 않은 일에 나의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 예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미국에 구두로 거부가 된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담임목사가 구두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제 성공의 비결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셋째는 구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우선순위 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하고 형통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그 형통한 삶이 세상에서 인정해주는
우리의 경력이나 실력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만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에서는 실력만 있고 능력만 있으면
우선은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실력으로 성공해도 결국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게 된다는 이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판단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가져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다고 하셨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 없이 어리석게 사는 결과는 “삶이 부패하고
악하고 선을 행하는 일이 없다” 말씀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라도
모든 일들이 잘 풀리고 형통하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삶의 우선 순위에 두고 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절대 진리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이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성경의 사람들 중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삶의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았을 때 실패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승리하고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었다.
실패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있는 것들을 제일로 삼고
살 때마다 실패하고 넘어졌다.
우리도 이것을 잘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 하신다.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할례의식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만 필요하신 분 되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힘들고 어려울때만 필요하신 분 되시기를 원하지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늘 생각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계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와 항상 동행 하기를 원하신다.
이런 관계회복을 원하신다.

우리 삶에도 이런 관계가 중요하다.
14일이 발란타인스 데이 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 관계가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가족관계, 교우관계, 동료관계, 고용관계등 모든
인간관계에 이런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회복되지 않은 관계에는 기쁨과 평화와 만족이 없다.
불화, 불평, 원망, 불만과 부족한 것만 있게 된다.
이런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이루어 지지 않는 한 사람과의
바른관계, 부모와의 바른관계, 교우간의 바른관계,
그 어떤 바른 관계도 기대할 수 없다.
잘 되는 일 바르게 되는 일 기대 할수 없다.
오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함께 살펴 보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정립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오늘 상황은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인인 여호수아가 보기에도 치명적인 전략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전쟁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다.
성경의 흐름을 보면 지난 시간에 살펴 본 4장까지는 무엇인가?
40년의 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순전히
하나님의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요단강 건널 수 없었다.
엄청난 감격과 놀라움을 안고 요단강을 건너
이제 가나안 땅에 진입했다.
이럴때 이스라엘이 할 일은 무엇인가?
철저한 방어 준비가 아니면 지금 기세데로
바로 밀고 들어 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1절에도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그들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곧 바로
밀고 들어가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다.

할례는 외과적 수술이다.
8일 이상이 지나야 회복이 된다.
적을 바로 앞에 두고 이런 할례를 행하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때가 할례를 행할 때라고 하셨다.
사람들 생각은 바로 지금이 전쟁할 때라고 생각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때가 할례를 행할때라고 셨다.
할례의식을 하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할례의식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도 한다.
그들은 단지 건강의 이유나 성인식 같은 종교적 의식으로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건강 상이나 종교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인을 치는 의식이다.
인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임을 확증하는 표시이다.
지난 시간에 12 돌이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라고 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시이다.
그런데 이 할례를 지난 40년 광야생활 동안에는 하지 못했다.
할례받은 1세는 불순종으로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에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고 관계를 정립하기를 명하신 것이다.
이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이 되는 것이다.
이 관계가 정립이 되면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모든 전쟁에 개입하시고 모든 삶을 책임을 지신다는
약속을 보증하시는 것이다.
이 일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바로 적앞에 이런 의식을 할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 유리한 상황이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유리한 상황만 신뢰하고 잘 되는 일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잠언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했다.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말들과
군사와 가진 것들을 신뢰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면서 정작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살다가 후회스러운 말년을
보내면서 남긴 말이다.
마음을 다하여라는 말은 다른데 마음쓰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에 마음을 다 써며 살라는 뜻이다.
모든일에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마음을 집중하라는 뜻이다.
그럴때 엄청난 지혜와 명철과 힘과 능력을 주신다.
우리도 그 힘으로만 인생의 광야에도 살수 있고
인생의 가나안에도 살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 12돌 기념비를 세우고
할례를 받고 이제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다.
유월절은 축제이고 예배이다.
그런데 광야 40년 유랑기간 동안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상황은 유월절을 지킬 상황이 아니다.
바로 적들 앞에서 예배하고 축제하는 것은 할례와 같은
또 하나의 어리석은 일이다.
유월절은 7일동안 완전 무방비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다.
유월절은 가나안 소산물을 먹을수 있었어도 배불리 먹지 않는 절기이다.
싸울 군사는 체력단련과 영양 보충이 제일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전혀 할수 없는 유월절을 지키라 하신 이유는?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는 무엇보더도 구원자인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었다.
유월절하면 이스라엘에게 생각 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고 사는 것이 그들의 힘이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가난안의 어떤 강력한 대적에게서도 구원하신다고 믿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목적을 두시고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키면서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구원하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전에 할례는 유월절에 참여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었다.
그 누구도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와 유월절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를 원하셨다.

여기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을 치시는
지금의 세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오면 할례가 세례로 바뀌어진다.
할례가 육체에 표시를 남긴 반면에, 세례는 물을 통해서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조건은 회개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 증표가 아니라 이면적 변화이다.
구약에 할례를 받았던 신약에 세례를 받던 간에 마음의 변화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받은 것만
자랑하지 말고 마음의 가죽을 베라고 했다.
이런 마음 상태로 드리는 유월절은 축제였고 예배였다.

우리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구약에 많은 사람들이 할례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도 않았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세례 받았다고 하면서도 바른 예배를 하고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른 예배가 어떤 예배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할 때는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 할때에도 예배하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누가 보아도 옳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을 할때는 정직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예배할 때는 전심으로 예배 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를 내가 정한 때와 상황에 따라 예배 한다면
그 것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예배는 아니다.

바른 예배는 예물도 준비하고 와야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마지 못해 억지로 떠밀려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밝은 마음, 기대에 찬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준비 되지 않은 마음으로 나올 때 성전 마당만 밟고 간다고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을 책망하셨다.
경외함이 없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식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본의 아니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바른 예배는 예배에 집중하는 예배다.
예배에 제일 방해요소가 나 자신임을 알라.
일 전에 제 딸과 사위가 시무하는 교회에 예배를 드렸다.
그 때 2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놀라운 일은 설교 중에 한 사람도 고개를 돌리거나
떨구는 사람이 없이 설교자를 향하여 집중 하는 것을 보았다.
꼬물락 대고 움직이는 사람은 우리 부부 밖에 없었다.
그때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보다 말씀에 집중을 잘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바른 예배는 예배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잡념이 없고 불필요한 동작을 통제할 수 있다.
바른 예배를 통하여 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모든 일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라.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3)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삶을 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 까지 수치를 가지고 살았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지만 여전히 애굽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때 까지 불평하고 불순종하고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그 수치를 굴러 가게 하셨다.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던 종의 수치스러운 모습들을
길갈에서의 할례를 통하여 다 때어 내 버리셨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들에게 수치가 남아 있어서 하나님에게도
수치가 되는 사람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자랑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아도
여전히 믿기 전의 수치가 남아 있다.
다 떼어 내 버려야 한다.
할례는 떼어내고 잘라내는 것이다.
불 순종의 수치가 있으면 잘라 내어라.
모든 구습, 악습을 잘라내라.
시기, 질투, 미움, 다툼, 분노, 분열, 교만,
자랑, 고집, 이기, 헛된 욕망, 불평, 불만, 비난, 비판등
모든 악습, 구습 다 잘라 내어야 한다.
신앙의 걸림돌이 되고 하나님에게 수치가 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잘라 내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삶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자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가 제일 신날 때가 언제인가?
자식 자랑을 할때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 살 때이다.
하나님에게도 자랑이 되어 살면
부모에게도 자랑이 되고 배우자에게도 자랑이 된다.
이웃에게도, 동요들에도, 서로에게도 자랑이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살면 바른 신앙으로 산다.
이런 바른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모든 사람에게 자랑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랑으로 여기시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신앙이다.
그래서 육신을 자랑하지 말고 신앙을 자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삶을 살라.

복습해 보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했나?
1)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2)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라.
3) 하나님의 자랑이 되라.

이런 회복된 관계에서 이스라엘은
이제 완전한 새 삶에 들어 갔고 먹는 음식도 달라 졌다.
40년 동안 먹은 만나 대신에 처음으로 가나안에서
얻은 소산물을 먹게 되었다. 만나가 그쳤다는 말씀은
이제 다시는 광야로  돌아가지 않는 다는
약속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앞으로 계속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풍요한 가나안땅에서
완전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정립하여 이런 복된 삶을 살라.

결단 기도하자.
이성으로 이해 할수 없는 일들을 만날 때에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겠다 결단하라.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 먼저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수치를 잘라내어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 살겠다 결단하라.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