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큰 믿음”
누가복음 7:1-10
2017년 7월 16일

얼마전 독일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게 되면서
이제 거의 모든 유럽 국가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이럴 때 유럽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절대로 무너지면 안된다.
한국이 무너지면 아시아가 무너지고
전세계가 다 무너진다.
한국 교회만은 기독교의 순수성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의 믿음도 지켜야 한다.
믿음은 가지고만 있으면 빼앗긴다.
믿음은 삶에서 방어하고 투쟁하고 보호하고
지켜야만 끝까지 내 믿음이 될수 있다.
그럴때 오늘 소개하는 백부장의 큰 믿음으로 살 수있다.
오늘 이 말씀에 백부장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사도행전 10 장에 나오는 고넬료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다.
이 백부장은 유대인도 아니다.
로마의 군인이며 믿음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당시 로마 군인이 되려면 태양신을 믿겠다는
서약을 해야만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태양신의 예배의식에 참석했어야만 했다.
그런 환경가운데서 그는 믿음을 지킨 큰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믿음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에는 인종과 종족에 한계가 없다.
직업에도 차별이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던 간에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믿음은 오직 자신들의 것이라고만 고집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백부장은
유대인들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므로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이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을 감동케 한 믿음이다.
어느정도 예수님이 감동을 받으셨나?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직 이만한 믿음 본적 없다” 라고 하셨다.
아직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지금 이 시점은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사역 하신 지가 일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또한 주님은 어릴 때부터 동족인 유대인들과
교제하고 예배하면서 살았다.
수 많은 종교인들, 소위 선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보지 못한 것이다.

충격적인 말씀이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들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도 들었다.
종교인들도 다 들었다.
제자들이 듣고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종교인들은 분개 했을 것이다.
왜? 자기 믿음의 최고라고 믿고 사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믿음이 최고라고 자만하는 최고 지도자들의 믿음이
일개 이방인 군인의 믿음보다
못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를 기록했다.
이 사건을 마태복음 8장에서 심하게 경고했다.
이방인이라도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나 유대인들이라도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서
이빨을 갈며 슬피 울 것이다 라는 경고의 사건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누가는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서를 기록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인 우리도 선민 유대인들의
믿음보다 더 좋은 믿음으로 살수 있다는
격려와 용기를 주는 사건으로 기록했다.

이제 오늘 이 백부장의 믿음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이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를 깨닫고
우리의 믿음도 주님이 감동하시는,
주님이 칭찬하시는 큰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포즈)

1)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이다.
먼저 그는 로마 군인으로서 속국 백성인 유대인들을 사랑했다.
놀라운 일이다.
로마와 이스라엘 사이는 사랑할 사이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에 원한이 있었고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 장로들이, 나이든 유지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간곡히 간청하기를 “그는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회당(교회)을 지어 주었습니다” 라고 했다.

군이들이 집을 짓는 일 어려운 일 아니다.
사람, 장비, 물자가 다 있다.
공병대를 동원하면 안 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로마 군인이었다.
로마 백부장이 유대인을 위한 회당을
지어 주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자기 신분도 생각해야 했다.
용기도 있어야 했다.
로마 군대의 규율을 위반한 댓가도 치르야 한다.
그는 희생할 각오를 하고 이런 일을 했다.

말씀은 그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으로 표현했다.
이런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
아가페 사랑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모든자들에게 은혜를 끼친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한다.
이런 사랑은 아무나 할수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도 사랑할 수 있다.
친구도 사랑할 수 있다.
자녀도, 부모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은 당연한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이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다.

이웃이란 말은 친한 이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모르는 이웃, 미워하는 이웃, 원수 같은 이웃을 말한다.
즉 이방인들, 로마인들, 버림받은 자들,
전혀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포함한 말이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이 사랑을 하셨다.
백부장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기록했다.
이 사랑으로 자신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또 하나 예수님을 감동케 한 믿음은
병든 노예를 고치려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다.
자식이나 부모나 형제를 고치기 위해 찾아 온 것도 아니고
병든 노예를 고치려고 찾아온 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병든 노예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노예의 병은 중풍병이라고 마태는 밝혔다.
노예도 어린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일반 사람도 아닌 노예가 중풍병이 들었다는 것은 생명의 끝이다.
이런 노예는 일을 하지 못하면 살 가치도 잃게 되었다.
주인이 갖다 버리면 되었다.
당시 헬라문화에서는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노예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도
선하게 여기거나 칭찬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당시 노예는 상품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노예들이 “사랑하는 종”이었다.
이 말은 모든 노예를 정말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겼다는 말이다.
그래서 백방으로 고치려고 노력하다가
예수님 소문 듣고 찾아 간청 한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 믿음을 알수 있다.
모든 사람을 귀하고 소중히 여기라.
가난하고, 힘없고, 불쌍한 자들을
돌아 보라는 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다.
그러니 예수님이 감동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감동하시는 믿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자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사
랑을 베푸는 믿음의 삶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으로 살라.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포즈)

2) 예수님의 귄위를 인정하는 믿음이다.
백부장은 최고의 상관보다 더 높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했다.
6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는 말씀의 권위를 인정 했다.
“오시는 수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 집에 오시는 것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셔서 치료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백부장은 말씀의 권위를 군대에서 경험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상관의 명령은 법이다.
자기 수하들도 마찬가지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
종들에게도 하라고 하면 반드시 한다.
백부장은 인간세계의 명령체계를 예수님과 자연세계에 적용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직책은 아무나 임명되는 직위가 아니었다.
당시 백 부장 (centurion) 이란 오늘날 중대장급 정도에
해당하는 지휘관인데 이들은 로마에서도
중류 계급 이상의 지식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의대로 상부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와 전투를 해 본 군인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인품과 통솔 력, 식견과 용맹 성 등
지휘관으로서 의 자질 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백부장이라는 직책에 임명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백부장의 권세는 로마황제가 위임한 권세다.
백부장의 명령을 거역하면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았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만 하시어도 질병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믿고 간청한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인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유대인들도 이런 믿음 없었다.
유대인들은 모두 예수님을 선지자
혹은 뛰어난 선생 정도로만 알았다.

예수님의 권위를,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세상이 벼랑 끝을 향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위를 인정하면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100%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문제는 누구나 쉽게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믿음이다.
100% 순종 못해도 항상 빛진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한 가지라도 더 순종 하며 살게 된다.
말씀의 권위를 믿고 사는 믿음을 회복하라.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포즈)

3) 겸손한 믿음이다.
예수님 앞에서 백부장은 자신을 낮추었다.
백부장은 그 당시 상당한 권세가 있었다.
만일 그가 교만 했더라면 얼마든지
당당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가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었다.
아니면 집에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을 그 집으로 오시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먼저 병든 종을 고쳐 달라는
간청도 친구 장로들에게 부탁했다.
예수님이 이방인 집에 찾아 오시게 하는 문화적
걸림돌도 있었겠지만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거룩하신 분을 영접하는 것을 두려워 한것이다.

그럴 때 예수님이 그 집을 찾아 가실 때 반쯤 오신것을 알고
또 친구들을 보내 이렇게 말씀드리도록 부탁 했다.
“저는 예수님을 집에 모실 자격 없습니다.
그럴 가치 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말씀만 하십시오” 라고 했다.
그 뜻은 오시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한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주님은 말씀만으로도 능히 종을
고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말씀으로 명령을 하시든지 선포만 하시면 됩니다.
이처럼 백부장은 주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는 것도
두려워할 정도로 예수님을 거룩하고 존귀한
신적인 능력과 절대 권세가 있으신 분으로 알고 있었다.

또 하나 백부장의 겸손한 성품을 증명하는 말은
“사랑하는” 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티마오”라는 말이다.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품는 감정을 말한다 (빌 2:29).
이것은 당시 백부장이 종에게 주인으로서 후대하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자세로 종을 소중하게 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주인과 노예 사이의 관계가
유대인들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백부장의 이와 같은 겸손함이 본문 전체에 흐르고 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기이히 여기셨다.
즉 놀라셨다는 뜻이다.
복음서에 “주님이 기이히 여기시다” 라는 말은 세번 나온다.
마8, 막6, 그리고 여기다.
모두가 믿음과 관련된 말씀이다.
그리고 모인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 노라 하시더라” 하셨다.

그 종은 어떻게 되었나?
예수님은 장로들과 동네사람들을 돌려 보냈다.
집에 가보니 이미 그 종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나았다는 말은 전인격이 치료 되었다는 말이다.
중풍병만 아니라 그동안 병으로 상처받은
마음 다 치료받고 영혼도 치료받았다는 뜻이다.
이말은 과거형이다. 주님의 사역은 과거에 이렇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전인격을 치료하신다는 뜻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지금 이 시간 백부장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1) 그의 믿음은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이었다.
자기를 원수로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조건없는 아가페 사랑을 베풀었다.
2) 그의 믿음은 겸손한 믿음이었다. 믿음은 겸손에서 시작된다.
겸손은 비우고 내려 놓아야 가능하다.
비우고 내려놓는 삶 만큼 편하고 만족한 삶은 없다.
겸손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다는 중거다.
3)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이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라.
마태복음에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네 믿은데로 될지어다” 라고 선포하셨다.
믿음의 권능과 권세가 이 정도라는 말씀이다.
말씀의 권세를 믿는데로 되는 삶을 체험하고 살라.
큰 믿음이란 이런 믿음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겸손한 믿음,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이다.
이런 큰 믿음으로 살면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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