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골로새서 3:18-25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
2017년 5월 21일

한 젊은이가 유대인 랍비를 찾아와서 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가정이란 무엇입니까?”
랍비가 대답했다. “가정은 ‘메누카’입니다.”
‘메누카’란 히브리어로 안식의 터전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이란 한마디로 안식할 수 있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젊은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영혼의 안식은 천국에 가야만 있는 것이 아닌가요?”
랍비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안식은 천국에 가야만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안식은 바로 가정에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가정이 그렇게 중요하고
가정이 우리의 삶에 참된 안식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가정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그 조건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라는 말은 큰 은혜라는 뜻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비와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안식과 평안,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다.

아브라함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아 복된 가정을 이루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생활 중에서도 높은 명예를 얻었고,
부자였으며, 자손의 복도 받았다.
이런 복된 가정을 이룬 비결은 곧 하나님의 헤세드
즉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이 은혜에 달려있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

어느 신학자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만드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밖에 없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교회도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이었다.
로마와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이었다.
골로새 교회는 눔바와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고린도 교회는 가이오의 집이었다.

교회의 원천은 가정이고 가정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가정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심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복된 가정이 되려면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복된 가정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복된 가정을 기대할 수 없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주님이라는 단어다.
8절 가운데 7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 말씀은 가정의 모든 일이 주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중심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살아야 할 삶이다.

왜 그런가?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 이나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새사람이 되었고 그 새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1절에서 17절까지 말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 새사람이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골로새 교회 시대나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가정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 병들어가고, 가정이 붕괴되고,
가정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가정이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다시 회복되기를 소원한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부부는 복종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다시 회복하려면
부부는 복종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먼저 말씀하고 있다.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먼저 말씀하는 이유는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 운동가들에게 이 말씀을 들으면 차별대우 한다고
항변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근거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우주 만물에 다 적용이 된다.
만물이 창조의 질서에서 벗어나 존재할수 없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정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깨어지면
그 가정도 정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복종이라는 말은 군대용어이다.
부하가 상관의 말을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복종은 노예적 복종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더 이상 노예적 관계는 없다.
우열 개념은 없다.
모두가 동등하다.

아담과 하와가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다.
남평과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등하지만 가정을 이끄는 권한을 남편이 받았다.
그래서 존경하는 마음과 신뢰를 가지고 복종하라고 말씀하셨다.

존경과 신뢰를 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성경은 (밷전 3) 그래도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이유는 아내의 복종하는 정결한 행위로
남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모델은 예수 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남편과 동등하지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를 위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남편에게 복종하며 선한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때 그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법이 성취되고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회복된다.

또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당시 가정안에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종들이 함께 가족으로 살았다.
그 중에 여자와 어린아이와 종들은 기본 인권도
무시 당하고 살던 시대였다.
약자의 위치에 있던 아내는 남편에게
자주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괴롭힌다는 말은 말로 행동으로 화나게 하거나
슬퍼하며 탄식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쓴 경험을 주고 독한 말로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뜻이다.

말씀은 이런 일 하지말라라고 한다.
이 단어는 이것을 지금 당장 멈추라는 강한 명령이다.
괴롭히는 습관을 당장 버리라는 말이다.
그리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하라는 말은 아내를 좋아하며, 소중히 여기며,
아내가 모든 것에 잘 되기를 바라라는 말씀이다.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구약에 이런 사랑이 있다.
호세아가 창녀 고멜을 사랑한 그 사랑이다.
말도 안되는 사랑이다.

예수님도 말도 안되는 사랑을 하셨다.
교회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속죄 제물로 주신 그 사랑이다.
자신의 전부를 주신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조건 없는 사랑이다.
말씀은 이 사랑을 남편에게 명령하고 있다.
이런 남편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내의 순결한 복종으로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부자는 순종과 양육자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회복하려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원어에 이 순종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 보다
더 강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반대로 번역이 되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절대 순종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같은 순종을 요구한다.
이유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하나님의 대리권을 부여하셨다.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은 5번째 계명으로 주셨다.
이 계명은 축복의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이라고 하셨다.
이 땅에서 반드시 잘 되고 장수하는 약속이다. (엡6)

부모를 순종하는 일에는 모든일이라고 명시 하셨다.
모든일에라는 말씀은 한가지나 몇가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시적이나 한정적으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나 무제한적으로 공경하라는 뜻이다.
비록 죄에 관련된 명령일지라도
순종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일이 하나님의 권위와 자신의 신앙양심에 위배되더라도
마음데로 대적할 것이 아니라 순종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려면 모든 일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들을 화나게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이 단어는 반복적으로 화나게 한다는 말이다.
번번히 그렇게 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화나게 만드는 이유는 부모의 권리를 남용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의 양육자, 보호자, 지지자이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부모는 자녀의 소유주가 아니다.
소유주인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양육하는 양육자이다.
자녀를 양육할때 내 욕망대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잘 보호하고 최대한의 은사를 살려
원하는대로 하도록 지지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화나게 하고 낙심하게 해서는 안된다.

브레인월드가 0세~19세의 자녀를 둔 부모 1천774명에게
‘양육 및 부모교육’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자녀 양육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로 68%가 ‘감정조절’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로 43%가 ‘자녀의 성격’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물었다.
가장 바라는 부모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가
‘감정조절 잘하는 부모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인종과 관계 없이 자녀교육의 문제는 똑 같다.

자녀를 절제없이 책망하고 화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화나게 하고 낙심하게 하면 열정과 용기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때 그 자녀는 미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 대신 부모는 이 한가지는 잘해야 한다.
가정 교육이다.
가정 교육은 성경 교육이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 (엡6)

교훈은 파이데이아라는 말인데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이다.
책망도 감정을 담지 말고 모욕적인 언행을 삼가고 일관성이 있는 책망이라야 한다.
훈계는 누데시아라는 말인데 자녀와 대화를 통하여 교훈하는갓이다.
공감적 대화, 긍정적 대화, 축복의 대화를 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고난 천제들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한국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차이는 한 가지다. 교육이 다르다.
성경중심 가정 교육과 세상 중심 가정교육이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절대 순종하고 부모는 성경 중심 가정 교육으로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회복되기 바란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주종은 순종과 배려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려면 종들도
자녀가 부모에게 절대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당시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었다.
주인의 보호를 받으려면 절대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종과 주인에게 주신 말씀만 아니라
오늘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바울은 우리를 일터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직업을
직업이라고 하지 않고 소명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각 직장에 육신의 상전들을 두시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셔서 사회와 국 가를 위해서
구체적인 일들을 하도록 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상전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주님이라고 생각하면 일하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 진다는 것이다.
상전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사람 눈치보고
사람 마음 맞추어 가면서 적당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 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일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로마 당시에는 노예가 절반이었다.
모두가 포로로 잡혀온 소위 고급 인력이었다.
집안 일 경영, 하잖은 심부름, 상류층이나 아이들 교육, 노동 등
노예들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회였다.
바울은 무슨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도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무슨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그 자리로
부르신 것이므로 그 일은 성직이고 소중한 것이다.
보내신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럴때 하나님은 선한 보응을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불성실하게 일하고 불의한 자에게는 악한 보응을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윗 사람은 아래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배려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여러모로 자상하게 염려해 주며,
마음을 써주며,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주는 것이다.
무조건 권위만 앞세워 책망하고 질책하는 것보다
아랫 사람의 형편을 자세히 살피고 염려하고 마음을 써 주라는 말씀이다.
말이나 행동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 으로 아랫 사람과 신뢰의 관계를 유지하라.

MIT의 경영학 교수였던 더글러스 맥그리거의 XY 이론이 있다.
X이론이란 인간은 본래 일하기를 싫어하고
지시 받은 일 밖에 실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리자는 금전적 보상을 유인으로 사용하고
엄격한 감독, 상세한 명령으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Y이론이란 인간에게 노동은 놀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므로 노동현장도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더 이상 어떤 보상이 전부가 아닌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보상 보다는 인간 중심의 관리를 선호한다.
관리는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원래부터 노동은 모두에게 수고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라고 하셨다.
의와 공평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즉 하나님의 심정으로 고용인들을 대하라는 말씀이다.
상전들은 섬김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주님처럼  의롭고 공평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또한 내 위에 하나님이 게심을 기억하고
부당한 행동을 삼가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에 가정과 일터는 분리될 수 없다.
직장이 잘 되어야 가정이 평안하다.
가정이 평안해야 보람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할수 있다.
이처럼 직장에서도 주님앞에서 일한다는 자세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라.

또한 아래 사람을 대할 때도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항상 의롭고 공평하게 처신함으로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회복하길 바란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회복하려면
1) 부부는 복종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2) 부자는 순종과 돌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3) 주종은 순종과 배려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복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어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
말씀 안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워가는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남편과 아내가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부모와 자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참된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그로 인한 상처를 성령으로 치유해 주소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기에 소홀했던
부모들을 용서하소서. 우리 가정이 오직 말씀 위에
세워져 하나님 나라의 복을 드러내고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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